목회자의 경력에 어떻게 목회했느냐 만큼 중요한 사안은 어떻게 은퇴하느냐이다. 목회자로서 평생 훌륭한 족적을 남긴 선배들이 적절한 시기에 은퇴하지 못해 자신의 업적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모습을 볼 때 가슴 아픈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현재 교회의 영적 상태, 적절한 후계자의 부재, 나아가 은퇴하는 분에 대한 재정적 지원 능력 결핍 등 적절한 시기에 은퇴할 수 없는 이유는 다양하다. 은퇴 이후 자신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수십 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지켜왔던 목회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것도 은퇴를 머뭇거리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사역의 최전성기에 은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은퇴는 목회자가 갖은 역량과 에너지가 전성기를 넘어 쇠퇴기에 이르렀을 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탄생, 성장, 번영, 쇠퇴, 사멸의 과정을 밟아간다. 쇠퇴와 사멸의 사이클에 들어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다. 목회자가 쇠퇴의 사이클에 들어가면서 은퇴를 통해 사역의 바통을 차세대에게 넘겨줄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람직한 세대교체는 없을 것이다.
로마는 2세기에 가장 큰 번영과 풍요를 누렸다. Edward Gibbon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2세기 로마야 말로 인류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말한다. 이 시기 로마가 이런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다섯 현제가 로마를 통치(A.D. 96-180)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가장 위대한 황제(리더)가 다섯 사람이나 연이어 재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열쇠는 후계자 발탁이었다. 5 현제의 첫 황제인 네르바부터 자신이 권력의 최정상에 있었을 때 후계자를 발탁하여 세웠기 때문이다. 양병무는 권력의 최정상에서 후계자를 선택할 수 있었던 5 현제의 혜안을 <행복한 로마 읽기>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아들은 고를 수 없지만 후계자는 고를 수 있다.”
마 9:37-38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그런 당부의 말씀 이후 마태복음 10장에서 주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약한 것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셨다. 요사이 리더십 어휘로 말하면 “임파워먼트”이다. 바로 다음 절에는 주님이 불러 세운 열두 사도의 이름이 나온다. 주님은 이들을 훈련하였고, 이들에게 사역을 위임하였으며, 사역을 위해 이들을 임파워하셨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그 일꾼을 훈련시켜 그들에게 사역을 위임한 이후 사역을 위해 임파워하겠다는 헌신을 전제한다. 목회자가 이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시기는 쇠퇴기가 아닌 전성기이다. 은퇴를 준비해야 할 최적기는 사역의 최정상에 있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