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어떤 범주의 문제에도 항상 답을 주었던 만물박사를 존경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인생과 사물에 대해 조금씩 배워 갈수록 내가 권위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인생의 모든 영역에 흔쾌한 답을 주는 사람이 조금도 존경스럽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잘 모르는 일에 대해 “I don’t know” 라고 말하는 지도자가 존경스럽다.
카피머신의 발명은 현대사회의 사건이다. 고대 필사가들은 성경의 사본을 손으로 옮겨 적었다. 인간이 손으로 하는 작업에는 항상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사본학은 성경의 필사과정에서 필사가들이 저질렀던 실수들을 여러가지로 분류하여 성경의 원문을 찾아내는데 활용하고 있다.
개역개정판 한글 성경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던 때의 나이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이 년에” (삼상13:1) 영어권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NIV 는 동일 구절을 이렇게 기술한다. “Saul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over Israel forty-two years” (사울은 삼십 세에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사십년 간 다스렸다). NEB 로 알려져 있는 New English Bible 의 기록은 이렇다. “Saul was fifty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over Israel for twenty-two years” (사울은 오십 세에 왕이되어 이스라엘을 이십 이년 간 다스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KJV 의 번역은 또 이렇다. “Saul reigned one year; and when he had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 (사울이 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이 년 되었을 때). 이렇게 다양한 번역의 원문인 맛소라 텍스트는 본문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울이 한 살에 왕이되어 이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물론 사울이 한 살에 왕이 되었다는 것은 필경사의 오류이다. 성경의 증거에 보면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성인이었다. 나아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한 살에 등극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원문이 분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30세에 왕이되어 40년 다스렸다든가, 50세에 왕이 되어 20년을 다스렸다는등의 성경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기 보다는 번역에 참가했던 학자들의 신학적 견해일 뿐이다.
이런 중에 NRSV (New Revised Stand Version) 은 전혀 새로운 시도를 했다. 삼상 13:1에 대한 NRSV 의 번역은 이렇다. “Saul was . . .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 . . and two years over Israel” (사울이 왕이되어 다스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 . . 세 였다. 그가 . . . 이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리더가 모든 것을 다 알아야 리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모르는 바에 대해 “I don’t know” 라고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고 말하는 리더에게는 호감이 간다. 인간은 언제나 약자의 편이다. 완벽한 지도자의 곁에 가는 것은 왠일인지 부담스럽다. 행여 자신의 전문 영역이 아닌 부분에 대한 질문에 대해 I don’t know 라고 말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그 부분은 저의 전문 분야가 아니네요” 라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권위있는 대답이 없다는 것을 피력하는 지도자에게는 더욱 신뢰가 간다. 지도자는 전지적 작가의 시각으로 모든 것에 능통하여야 한다는 부담을 벗어날 때 리더는 더욱 신선해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