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학개론의 저자 김승호는 장사와 기업을 구분하는 시금석 중 하나로 <수입을 만드는 방식>을 언급한다. 장사는 오너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돈을 번다. 부지런한 오너는 직원 3사람의 몫까지 혼자 감당해 내면서 인건비를 아낀다. 이렇게 성실하게 몸을 사용하여 일을 하다보면 손을 다치고 허리와 무릎에 이상이 오는 것은 다반사이다. 결국, 몸으로 과중한 일을 해 부자가 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기업은 아이디어로 돈을 번다. 이런 수입은 노동과는 상관이 없는 수입이며 무한대의 수입이다. 결국, 큰 부자는 노동이 아닌 생각에서 나온다. 자본이 적어서 장사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가 없어서 장사하는 것이다. 김승호는 말한다. “한 사업체를 선물 보따리로 가정했을 때, 사장은 선물 상자 안의 상품이 아니다. 상품을 묶는 보자기 같아야 한다… 상자 안에 좋은 직원들을 많이 담아서 이들을 묶어내는 보자기 같은 사람이 진짜 사장이고 이 사람이 사업가로 나아갈 수 있다.”

김승호의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어떻게 교회에 적용할 수 있을까?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전통적인 사고는 유교적 사고방식이다. 유교적 사고방식을 일에 적용한다면 “창조적 아이디어와 리더십을 발휘하라”보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라”일 것이다. 전통적 사고를 하는 목회자라면 사역에 대한 무게 중심이 “효과”보다는 “성실함”에 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런 결과가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그 일을 반복함으로써 언젠가는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아인스타인은 정신병(insanity)을 “동일한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노동자가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면 사장(리더)은 자신의 직원이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고, 훈련하며, 위임하고,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300만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초기에 모세는 성실한 노동자였다. 모세의 성실함은 이스라엘 진중에 비효율과 불평만을 가져다주었다. 모세의 성실함에 대한 장인 이드로의 평가는 이렇다: “네가 하는 일이 옳지 못하도다.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다”(출 18:17-18).

엡 4:12은 목사의 업무가 “성도를 온전케하여 (성도가) 봉사의 일(사역)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으로 목사의 사역을 본다면 목사의 직무유기는 사역을 독점하는 것이다. 이런 목사는 성도를 사역자로 개발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목사 자신이 과중한 정신적, 육체적 노동으로 인해 지쳐있다. 지친 목회자가 목회하는 교회는 결코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한다.

전투에 참가한 군인들은 탄환과 폭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극도의 긴장 가운데 적과 싸울 것이다. 바쁘기로 말하자면 이 이상 바쁠 수가 없는 곳이 전장이다. 이렇게 바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뿐 아니라 국가가 패망한다. 그러나 이렇게 바쁜 전장에서도 사단장은 상황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큰 그림을 그리고, 전세를 역전시킬 아이디어를 생각할 여유가 있다. 사단장이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총을 들고 최전선에 나가 미친 듯 뛰어다니면 전우들과 함께 적진을 향해 총을 쏜다면 이는 사단장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직무유기이다. <수입을 창출하는 방식>이 장사와 기업을 구분한다면 사단장이 전투에 참여하는 방식과 사병이 전투에 참여하는 방식은 달라야 한다.

김승호는 비스니스 맨에게 질문한다: “장사인가? 기업인가?” 나는 목회자에게 질문한다: 노동자(사역자)인가? 리더인가? 노동자적 목회자는 자신이 모든 사역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그 결과 성도는 사역의 수혜자 내지는 방관자로 남게 된다. 효과적인 리더는 성도를 훈련하고, 그들이 사역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뿐 아니라 끊임없이 그들을 독려하여 그들이 사역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