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판 MK 스포츠뉴스는 <한국, 12년 만에 16강 진출 . . . 도하 기적은 어떻게 완성됐나> 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대한민국이 H조 2위로 도하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는 과정을 숨가쁘게 기술하였다. 문자 그대로 이 과정은 가장 극적이었으며 기적이었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국팀의 주장이며 세계축구계의 “손세이션”인 손흥민 선수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제 값을 치른 대가를 오늘 받고, 내일 받을 대가를 위해 오늘 먼저 값을 치른다. 후불은 없다. 지금 나를 자제하고 훈련하며 꿈을 향해 달린다.” 그렇다면 한국팀의 16강 진출은 뼈를 깎는 훈련이 그 직접적 원인이었다. 거기에 더한 기적이 한국팀을 16강에 진출시켰다. 그러나 8강전에서 브라질을 만났을 때 기적은 재현되지 않았다. 기적은 그 정의상 일상적인 일이아니다.
한국축구팀과 손흥민이 지불해야했던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태극전사들에게는 개인의 삶이 없었다. 오직 훈련이 모든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다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중요시 여기는 하나를 성취하려면 다른 중요한 어떤 것을 포기하여야한다. 전문인이 되는 원리도 동일하다. 집중의 원리를 따라 매일 우선순위에 집중하고 모든 것에서 잘하려는 야심(?) 을 버려야 탁월한 리더로 만들어진다. 존 멕스웰은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Everything worthwhile is uphill!–가치있는 모든 것은 산정상에 있다.” 정상에 오르려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갈 수 없다. 메고가는 짐이 가벼워야 정상을 정복할 수 있다. 1953년 에드워드 힐러리 경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하였을 때 그가 등반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올라가려 했다면 그는 결코 이 등정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수불가결한 몇가지만 가지고 산에 올랐기 때문에 에베레스트를 정복할 수 있었다.
사회심리학자 허태균 교수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못하고 두 개를 모두 추구하고자 하는 “복합 유연성”이 한국인의 보편적 심성이라고 말한다. 허교수에 의하면 “짬짜면”이야 말로 한국인의 복합 유연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짜장면과 짬봉 중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못하는 심리. 그러나 그는 짬짜면 처럼 안타까운 식습관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짜장면과 짬뽕을 동시에 입에 넣고 환상적 맛의 믹스를 즐기지 않는한 짬짜면은 짜장면도, 짬뽕도 어느것 하나 마음 껏 즐기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오늘 짜장면을 한 껏 즐기고, 내일 짬뽕을 한 껏 즐길 것을 그는 권한다. 이것이 인생을 질적으로 사는 방법이다.
성취를 위한 리더십도 동일하다. 우리가 한국인 고유의 복합 유연성에 사로잡혀 있다면 결코 탁월한 성취를 맛 볼 수 없을 것이다. 소중한 어떤 것을 포기하여야 또 다른 소중한 어떤 것을 획득할 수 있다. 내어 놓지 않으면 소유할 수 없다. 요3:16 은 성탄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성경구절 중 하나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하나님도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셨다. 그 결과 가장 소중한 것을 얻으셨다.
무엇을 내어넣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는 리더의 사명과 비전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면에서 성취를 원한다면 내어놓아야 할 것을 내어 놓고 추구해야 할 것에 집중해야한다. 선택과 집중은 뻐를 깍는 노력을 요구한다. 알피니스트 짐 휘테커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산을 정복하는 사람은 없다. 오직 등산가 자신을 정복할 뿐이다.” 리더는 타인을 정복한 사람이아니다. 리더는 자신을 정복한 사람이다. 리더가 리드하기 가장 어려운 대상은 언제나 리더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