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는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서 열린 제 28기 미주 제자훈련 지도자세미나에 참석하였다. 이 세미나는 제자훈련을 향한 옥한흠 목사의 열정과 철학, 또 그 실천방법을 분석하여 가르치는 것으로서 옥한흠 목사가 사랑의 교회를 건강하게 성장시킨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던 유익한 세미나였다. 지역교회의 99% 구성요소인 평신도를 작은 목사로 훈련하여 목회자가 평신도와 동역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아 ‘미친사람’ (제자 훈련에 대한 옥목사의 열정은 광인론으로 알려져있다) 처럼 제자훈련에 집중해 온 옥한흠 목사는 제자훈련에 성공한 실천가였을 뿐 아니라 성경이 제시하는 교회와 사역의 모습을 정확하게 본 이론가이기도 하다. 이론과 실천이 병행했을 때 전에 없었던 성공과 성취가 있었다. 이론이 없는 실천은 약하며, 실천이 없는 이론은 공허하다.
그러나 리더십을 연구해 온 필자는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과연 이론과 실천이 있다면 모든 프로젝트는 성공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경제학자가 사업을 해도 망할 수 있다 (사실 경제학자가 하는 사업일수록 도산의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위대한 성취 뒤에는 언제나 탁월한 리더십이 있다. 평신도를 훈련하여 그들을 작은 목자로 만든 다음 그들과 동역하는 모델은 목사에게 남다른 리더십이 있을 때 만 가능하다. 교인을 훈련하는 리더십이 있어야하며, 훈련된 사람에게 사역을 위임하는 리더십이 있어야한다. 나아가 오랜 기간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 할 뿐 아니라, 사역 중 몇 번이고 그만 두고 싶은 순장에게 끊임없이 비전을 제시하고 그를 격려하여 그가 계속 사역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리더십이 있어야한다.
하버드 온라인 비즈니스 스쿨은 How to Become a More Effective Leader 라는 소책자에서 성공적인 리더가 팀원을 상대할 때 꼭 가져야 할 리더십 요소를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1. 피드백, 2. 인정, 3. 커뮤니케이션, 4. 위임, 5. 존중, 6. 훈련. 필자는 이 6 가지 리더십 자질 중 동질의 자질을 하나로 묶어 다음의 3가지를 본다: 1. 커뮤니케이션, 2. 위임 (인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과업을 위임할 수 있다) , 3. 훈련. 이것은 정확하게 혹한흠 목사가 갖었던 리더십 자질이다.
1. 커뮤니케이션: 옥한흠 목사는 제자훈련목회에 대한 자신의 비전이 성경이 제시하는 본질적인 목회의 그림인 것을 설교와 저술을 통해 일관되게 커뮤니케이트하였고 끊임없이 이를 추구하였다. 우리는 제자훈련을 통해 옥한흠 목사가 이루었던 목회적 성취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가 잃어야 했던 것들을 상상할 수 있는가? 전통적 교회에 익숙한 수많은 교인을 잃었을 것이다. 제자훈련에 집중하기 위해 교회가 할 수 있으며, 해야 할 많은 사역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또 이러 이러한 사역들을 교회가 해야 한다고 담임목사에게 권고한 사람들이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을 것이다. 이들을 놓지지 않기 위해 각종 사역들을 교회에 추가했다면 그의 커뮤니케이션은 일관성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의 말과 그의 행동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리더십의 모든 것이다. 교회의 전통적 사역구조에 익숙한 교인들이 자신의 사역 방향을 반대하며 교회를 떠날 때 제자훈련 목회에 대한 분명한 성서적 근거를 확신있고 설득력있게 커뮤니케이트하면서 견고하게 설 수 있는 내적 근력이 없는 리더에게 제자훈련 목회는 불가능하다.
2. 위임: 겔럽 조사에 의하면 위임을 잘하는 CEO는 조직의 생산성을 33% 향상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과업 중 일부를 팀원에게 위임한 CEO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벌은 시간을 CEO가 꼭 해야하는 더 중요한 과업에 사용했다. 나아가 자신의 장점과 부합한 과업을 위임받은 팀원은 더욱 진취적으로 자신의 과업에 집중하였다. 결과는 생산성의 향상이었다.
출애굽기 18장에서 모세는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과업을 타인에게 위임했기 때문이다. 교회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자신이 컨트롤 해야하는 성품의 목회자라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위임이다. 일하는 방법 중 가장 쉬운 방법은 혼자 일하는 것이다. 리더가 팀과 함께 일하려면 팀의 결정이 리더의 비전과는 조금씩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나의 과업이 우리의 과업”이 되게하려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금언이 진리가 되려면 위임과 책임, 권한분배, 및 리스크 테이킹 (risk taking)의 리더십이 전제되어야 만 한다. 이것 없이 얇은 백지장을 여러사람이 맞들었을 때는 백지장이 찢어지는 것 당연한 이치이다.
3. 훈련: 성경은 목회의 가장 근간이 성도를 훈련하여 사역하게 하며, 이를 통해 교회를 세우는 것임을 엡4:11-12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논산 훈련소에 입대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은 없다. 이들을 훈련의 장으로 끌어오기 위해 목회자에게는 탁월한 열정, 카리스마, 동기부여의 능력이 요구된다. 종종 우리는 “양떼를 호수가로 인도할 수 있지만 물을 마시고 말고는 양떼에게 달려있다” 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사실이나 리더십이 없는 말이다. 양을 몰고간 목자에게 리더십이 있다면 호수에 다달았을 때 목자는 양에게 소금에 절인 건초를 먹일 것이다. 그러면 양은 이네 목이 말라 물을 찾을 것이다. 이것이 동기부여의 리더십이다. 동기부여의 리더십이 없다면 단지 제자훈련이 성경적이기 때문에 교인들이 따르리라 생각하는 것은 ‘나이브한’ 생각에 불과하다.
메니지 먼트의 대가 Peter Drucker 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일의 흥망성쇠는 리더십에 달려있다 (Everything rises and falls on leadership).” 제자훈련도 예외가 아니다. 옥한흠 목사와 같이 탁월한 제자훈련가가 되려면 그의 사역 방법론만 배워 실천하는 것 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감사하게도 제자훈련지도자 세미나는 방법론과 아울러 옥한흠의 정신과 교회에 대한 옥목사의 이해를 강조했다. 그의 방법론과 아울러 그의 정신과 신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강조점이다. 그러나 리더십의 관점에서 필자가 추가하고 싶은 한가지는 이것이다. 만일 목회자가 옥한흠 목사와 같은 리더십을 먼저 개발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제자훈련목회로 전환했다고 해서 옥한흠 목사와 동일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생각은 막연한 기대일 뿐이다. “모든 일의 흥망 성쇠는 리더십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