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팔라우는 빌리 그래함과 함께 우리 시대를 풍미한 복음 전도자이다. 1934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루이스는 영국인이 운영하는 기숙학교에서 영어로 공부하는 등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 그러나 10세 때 아버지를 여의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었고 어쩔 수 없이 그는 6명의 동생과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소년 가장이 되어야만 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복음을 받아들였던 루이스는 18세 때부터 라디오를 통해 듣기 시작했던 빌리 그래함의 설교를 통해 복음과 구령의 열정이 가득한 청년으로 성장하였다.

그가 20대였을 때 독지가를 통해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복음 전도를 향한 열정을 가졌던 그는 이 기회로 인해 감격했으나 쉽사리 유학을 결정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경험했던 것 같은 결정적인 주님의 소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유학을 포기하려고까지 생각했던 그에게 그의 어머니는 탁월한 조언을 해주었다. “결정적인 부르심의 체험이 없기 때문에 주의 종이 되는 것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은 무엇이냐? 성경에 명료하게 말씀하신 것 이외에 도대체 너는 어떤 부르심을 더 받아야 한다는 말이냐?”

위키피디어는 멘토링을 “원래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겸비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1:1로 지도와 조언을 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멘토링의 기본은 <조언>이다. 어머니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금세기 빌리 그래함에 버금가는 복음 전도자 루이스 팔라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언을 통해 멘토는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다음 세대로 확장해 간다. 조언을 통해 멘티는 이전 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전수받아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성취를 향해 곧고 넓은 보폭을 내어 딛는다.

루이스 팔라우는 1960년대 초 미국에서 신학교육을 받으면서 그는 같은 학교에 다녔던 Patricia Scofield와 결혼하여 네 자녀를 두었다. 1962년 빌리 그래함의 Fresno, CA 전도대회에서 인턴으로 봉사하면서 빌리 그래함의 평범함과 겸손함에 큰 감동을 받았던 그는 1960년대 내내 빌리 그래함의 전도 설교를 중·남미에서 통역하면서 빌리 그래함을 통해 자신의 미래 사역을 결정짓는 영감을 받았다. 멘토링의 기본이 <조언>이라면 가장 강력하게 조언의 전달 방법은 <언어>가 아닌 <영감>이다. 조언은 귀로 듣는다. 그러나 영감은 눈과 가슴으로 보게 한다. 비전에 대한 강의에서 존 맥스웰은 이렇게 강조한다. “볼 수 없으면 소유할 수 없습니다.”

남미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었던 루이스 팔라우에게 전 세계를 향해 복음의 포문을 열 기회가 주어졌다. 루이스의 멘토였던 빌리 그래함이 그에게 수십만 불의 자금과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의 이사 두 사람을 위탁해 줌으로써 루이스 팔라우 전도협회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이것이 Portland, OR에 자리 잡은 Luis Palau Association(http://www.palau.org)의 시작이다. 책임 있는 멘토는 멘티를 향한 조언을 뛰어넘어 멘티의 성공을 위한 기초를 놓아준다. 그래야만 멘티가 성공할 수 있다. “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의 청출어람(靑出於藍)은 후배나 제자가 선배나 스승보다 더 탁월한 성공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멘토의 기쁨이며 멘티의 사명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스승을 능가하지 못하는 제자는 스승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청출어람을 기뻐할 수 없다면 멘토링 할 수 없다.

1973년 빌리 그래함은 서울 전도대회 마지막 날 120만 인파를 모이게 함으로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집회를 만들어내었다. 1982년 루이스 팔라우는 과테말라시티에서 70만 인파를 모이게 함으로 기독교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집회를 만들어내었다. 그 스승의 그 제자이다(물론 이 기록들은 더 이상 최대의 인파가 아니다. 현재 세계 최대의 집회 인파는 나이지리아에서 라이하트 본케가 세운 기록인데 그 역시 집회에 사람을 오게 하는 방법을 빌리 그래함을 통해 배웠다고 말하고 있다). 1973년 빌리 그래함 팀이 서울에서 역사적 전도대회를 마친 이후 바로 아르헨티나로 날아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루이스 팔라우 팀과 함께 연합 전도대회를 개최하였다. 서울에서 대성공을 이룬 빌리 그래함 팀이 호텔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기쁨에 넘친 루이스는 빌리 그래함 팀의 찬양 인도자인 클리프 베로우즈에게 이렇게 말했다. “클리프 목사님, 서울에서의 여세를 몰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도 강력하게 복음을 전하십시다.” 이 순간 루이스는 잊을 수 없는 조언(멘토링)을 받았다. “루이스, 영적 세계에 ‘여세’란 것은 없습니다. 서울에서 받은 기름 부으심은 서울 사역 이후 끝났습니다. 우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전도대회를 위해 새로운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호텔 로비에서 무릎을 꿇은 채 기름 부으심을 위해 기도했다.

1990년대 미국과 세계에는 모슬렘 인구가 급증했다. 나아가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권위와 형식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전도대회(영어로는 Crusade로 표기하는데 직역하면 십자군 운동이다)라는 이름과 가운을 입은 성가대, 검은 양복을 입은 설교자의 강력하고 긴 설교 등의 전통적 형식으로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때 루이스 팔라우는 과감하게 전도대회(Crusade)라는 이름을 버리고 축제(Festival)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가족이 함께 즐기는 분위기, 팝 뮤직과 같은 찬양, 스케이트 보드, 자전거 및 오토바이 묘기 등으로 전도대회의 형식조차 새롭게 만들어버렸다. 그 결과 2001년 Fort Lauderdale, FL에서 이틀간 열렸던 그의 BeachFest에는 30만 인파가 운집하여 복음을 들었다. 이 이후로 빌리 그래함도 전도대회라는 이름 대신 축제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멘티가 멘토에게 <조언>했다. 청출어람이다. 멘토링의 성공이다.

오래전 목회의 대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선배 목사님들에게 아무런 멘토링을 받지 못한 채 잡초처럼 혼자 성장했습니다.” 안타깝지만 나 자신에게도 그것은 현실이었다. 한국 목회자가 멘토링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자신들이 멘토링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은퇴 이후 빌리 그래함은 루이스 팔라우에게 이런 조언(멘토링)을 했다. “루이스, 나의 사역은 대실패입니다. 나는 전 세계에서 대규모로 복음을 전했지만, 나와 같은 규모나 더 큰 규모로 복음을 전하는 후배들을 키워내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그런 실수를 하지 마십시오.” 그 조언을 가슴으로 받은 루이스는 1998년 차세대 복음 전도자 40명을 포틀랜드에 있는 자신의 사역 본부에 초청하여 Next Generation Alliance(NGA)를 구성한 뒤 그들을 멘토링하고 세계적 사역을 위한 문을 열어주었다. 나 역시 그 모임에 참여하여 훈련을 받았으며 결국 루이스를 통해 아프리카의 르완다에서 복음 전도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그 이후 동유럽에서 시작한 나의 사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복음 전도와 리더십을 개발할 수 있도록 확장되었다.

지난 50년간 루이스 팔라우는 세계 80개국에서 3억의 사람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였다. 또한 48개국의 1,780개 라디오 방송국에서 영어와 스페인어로 수십억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의 차세대 복음 전도자 멘토링 프로그램인 NGA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이년 전 Global Network of Evangelists(GNE)로 이름을 바꾸었고 미국의 차세대 복음 전도자에 대한 멘토링을 뛰어넘어 전 세계에 800여 명의 차세대 복음 전도자에게 복음 전도자의 삶과 사역을 멘토링 해오고 있다. 이들의 전도사역을 통해 넓어진 루이스 팔라우의 복음전도사역의 지경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지난 3년간 폐암 4기 환자로 살면서도 강력하게 사역했던 루이스 팔라우는 3월 11일 86세를 일기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마지막 숨을 몰아 쉬어야 했던 순간에도 12명의 손주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방에 불러 구원의 확신을 확인하고는 눈을 감았다. 2019년 그가 마지막으로 인도했던 차세대 복음 전도자대회에서 전했던 말씀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가 강단에 서기 직전 말씀을 전했던 강사는 복음 전도자가 이겨야 하는 세 가지 유혹에 대해 말하였다. 돈, 명예, 이성–사실이지만 진부한 이야기이다. 연이어 강단에 올라온 루이스는 이렇게 자신의 강의를 시작했다. “앞의 강사가 적절하게 복음 전도자가 이겨야 하는 3가지 유혹에 대해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네 번째 유혹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유혹은 전도사역을 포기하고자 하는 유혹입니다.” 그 순간 나의 눈에 고즈넉이 눈물이 고였다. 끝없이 그 유혹에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빌리의 멘토링이 루이스를 만들었고, 루이스의 멘토링이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나의 영혼에도 후배 한 사람을 세우고자 하는 열정이 불타고 있다.

[정태회 목사의 삶, 안목, 리더십] 멘토링 (2) – 루이스 팔라우(Luis Pal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