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서 예수가 그러했던 것 처럼, 구약에서 모세도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낸 이후 엄청난 변형을 경험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대화했던 장면 (출24) 과 예수가 기도하던 중 변화산에서 경험했던 에피소드 (막9:2-8) 사이에 나타난 유사점으로 인해 일단의 학자들은 공관복음의 저자가 시내산 모세의 이미지를 변화산 예수의 이미지에 투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 40주 40야를 하나님과 독대했다. 이를 통해 모세는 성소의 식양과 예배 양식 뿐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기록한 두 개의 증거판을 하나님으로 친히 부터 받았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삶과 예배의 근간이 기도하는 리더에게 주어진 것이다. 리더가 모든 스케줄을 취소한 채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올인했을 때 생겨난 엄청난 수확이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산 아래서 우상숭배의 죄를 짓고 있었다. 이들의 리더로 남겨진 아론은 어떠했는가? 기도에 집중하는 대신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어 그들의 불안을 제거하는데 집중했다. 원리를 따르는 지도자와 상황을 따르는 지도자의 차이는 너무나 현저했다. 영적 지도자가 추구해야할 리더십의 우선원리는 하나님이다.

진노한 하나님은 죄지은 이스라엘을 쓸어버리고 모세를 통해 새로운 백성을 만들것이라고 선포하였다. 하나님은 초월자이며 절대자이다. 초월자의 선언은 속세에 살고있는 인간의 선언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절대자의 뜻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 절대자의 뜻을 바꿀 수 있는가? 이 엄중한 신학적 질문에 대한 성경은 Yes 라고 대답한다. 모세는 중보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바꾸었다 (출32:14).
산에서 내려와 죄지은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한 이후 모세는 다시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을 대면했다. 그의 기도는 처절했다.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출32:29). 생명을 내어 걸고 기도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일게다. 하나님은 이제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그들을 인도할 것을 약속하셨다 (출32:34; 34:2).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셨다 (출33:3). 이에 모세는 다시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뜻을 바꾸어 “내가 친히가리라” (출33:14) 는 약속을 주셨다.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기도했다. 이때 모세는 자신의 이전에 누구도 받지 못했던 엄청난 계시를 받았다 이 계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것이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34:6-7). 이 계시는 모세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받지 못했을 것이다. 모세의 기도는 신학적 발전마져 가져왔다. 기도해야 영감이 넘쳐난다. 기도의 용광로에서 만들어지 않은 설교에는 성경의 해석과 적용은 있으나 죄인의 영혼에 감동을 가져다주는 통열한 영감이 없다.

식음을 전폐한채 40주 40야를 집중하여 하나님을 대면한 모세! 그가 증거의 두 판을 손에 들고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은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출34:29).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셨을 때 그의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 (눅9:29) 가 났던 것과 흡사하다.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 제로는 자신이 조각한 ‘모세상’에 이 광채를 표현할 방편이 없어 모세의 머리에 뿔을 두 개 달아 놓았다. 영광와 위엄의 상징이다. 기도하는 리더에게는 영적 권위가 주어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든 사람이 보고 두려워한 이 광채를 모세 본인만 몰랐던 것이다 (출34:29). 리더가 갖은 영적 권위는 타인이 인정해주어야만 유효하다. 리더 자신이 자신의 영적권위를 강조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가 영적지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해 줄 뿐이다. 아브라함 링컨은 “중년 남자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중년의 리더가 자신의 얼굴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방편 중 하나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깊은 영적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