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세계에서 인간의 평등은 지극이 당연한 전제이다. 그러나 동양의 정서는 인간의 평등보다 피라미드적 구조의 계급의식이 지배하고 있다. 이런 사고의 패턴은 언어사용에도 극명하게 들어난다. 대학에서 배웠던 영어수업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의 영어수업은 이렇게 나누어져있다: 초급영어, 중급영어, 고급영어. 영어 문법의 난위도를 급수로 계산한다. 수업이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으로 나누어져 있다면 이는 누가 더 고위에 있는가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미국 대학에 유학와서 수업 시간표를 보니 동일한 수업에 대한 표현이 달랐다: Basic English, Intermediate English, Advanced English. 누가 더 앞서갔는가가 관건이지 누가 더 높은가가 관건은 아니다. 영어의 리더라는 말로 고위직이라는 말보다는 이끌고 간다는 의미이다. 이끌고 가기 위해서는 앞에서만야 한다.
계급적 사고를 하는 동양인에게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충격적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너희 중에 큰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23:11).

필자가 네팔에서 사역에 집중하여 사역을 시작한지도 1년이 넘었다. 그 동안 세번의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하였고 네팔의 여러교회에서 말씀을 전하였다. 최근 필자는 네팔 선교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fundraiser 를 개최하였고 강사로 네팔 기독교의 탁월한 리더인 Tek Dahal 목사님을 초청하였다. 대표적인 힌두교 국가인 네팔은 인구의 2% 미만이 예수를 믿는 미전도 지역이다. Dahal 목사는 네팔 기독교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National Churches Fellowship of Nepal (NCFN) 의 총회장이다. 네팔에는 약 110만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다. 이중 약 80만명의 그리스도인들과 이들이 속해 있는 2천개 이상의 교회가 NCFN 에 속해있다고 하니 네팔에서 Tek Dahal 목사의 영향력이 어떠한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런 리더를 만났을 때 필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물어보았다. “목사님은 지도자가 가져야 할 첫번째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다.” Dahal 목사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하였다. “섬김”입니다.

인간의 평등보다 피라미드 구조의 사회계급에 더 익숙해 있을 아시아의 지도자가 이렇게 말한 것은 적어도 필자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 . . 네팔이 망해가는 이유는 리더가 섬기려고 하기 보다 자신을 섬기라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국가 공무원만 되면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이어야합니다.”

섬기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지도자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기득권을 포기하는 순간 지도자는 수많은 위협에 자신을 노출할 수 밖에 없다. 리더십에는 반드시 도전과 위협이 있다. 모세의 철저한 후원자였던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의 약점(?)을 잡아 자신의 리더십에 도전 (민 12장) 할 줄 모세가 한번이라도 상상해 보았을까? 더우기 아론과 미리암은 자신의 가족이 아닌가? 권력은 가족과도 나눌 수 없는 속성이 있다던가?

어쩌면 리더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기적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이끌고 가는 기관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권위와 카리스마로 둘러싸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교회 지도자의 몰락은 교회의 몰락으로 이어질수도 있다. 교회의 몰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도자는 자신을 지켜야한다. 공격받을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득권과 권위를 스스로 내어놓고 섬기는 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없이 행할 수 있는 가벼운 결단이 아니다. 그러나 섬김을 받는데만 관심이 있다면 예수님이 보여준 지도력은 아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7:12). 리더는 사람을 얻어야 한다. 사람을 얻기 위해 리더는 기꺼이 나 자신을 타인에게 줄 수 있어야한다. 좋은 친구를 찾기 원한다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한다. 선교사역을 위해 10년이상 모금활동을 하다보니 조금 모금의 기본원리가 눈에 보인다. 나에게 베풀어주는 사람들은 90% 내가 먼저 베풀었던 사람이다. 베풀고자하는 마음과 이의 실천이 섬김이다. 이것이 없다면 기독교 지도자는 아니다. 부활은 언제나 죽음을 전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