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미국은 대통령 선거로 인해 야단법석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두 대선 후보 모두 침몰해가는 미국의 경제와 국가적 위상을 살려낼 비책을 제시하면서 메시아적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는 각자 자신의 세계인 정계와 재계에서 탁월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다. 그런데 왠일일까? 이제까지 자신이 쌓아온 경륜을 바탕으로 미국을 재건하겠다는 두 후보의 애국적 비전이이번 선거에서 처럼 투표자의 가슴에 공허하게 다가온 적은 일찍이 없었다.
군중이 투표를 통해 소수의 리더를 선출하는 것이 민주주의 선거방식이다. 1억이 넘는 투표권자가 투표를 통해 한 사람의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국론의 분열이 없다면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의 어불성설은 후보의 정책이 아닌 후보의 인간됨 (도덕성) 에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의 너저분한 사생활과 수치를 모르는 입담, 나아가 차별적이며 안하무인격 태도는 비록 그가 자신의 영역에서 성공 했으나 그의 내면세계가 얼마나 초라한지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길래 그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 공화당의 리더들 조차 그를 지지하지 않을 정도이다. 대통령 후보로서 납세 내역을 공개하지 않은 그에 대해 NY Times 는 그가 1995년 1조원 이상 (9억 1600만불) 의 손실을 보았다고 IRS에 신고한 이후 지난 18년동안 소득에 대한 세금을 한번도 내지 않은 것으로 보도하였다. 힐러리는 트럼프가 납세 내역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세금을 도둑질 했거나 아니면 자신의 주장과는 달리 별로 성공한 비즈니스맨이 아니기 때문” 이라고 일축해버렸다.
트럼프에 대해 이런 공세를 날린 민주당 대선 후보 클린튼 역시 도덕성 부재라는 동일한 비평에 시달리고 있다. 알칸사 시절의 추문은 차치하더라도 그가 영부인으로 백악관에서 생활했던 동안 Travelgate, Chinagate, Filegate, Pardongate 등 수많은 권력형 스캔들을 남겼으며 국무장관 재임시절 Benghazi 사태와 Emailgate등 도덕적 결함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대통령 후보로 선전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클린턴 재단에 들어오는 천문학적 기부금의 불투명한 운영과 기부자체의 불법성에 대한 혐의를 볼 때 권력자가 아닌 평범한 시민이었다면 그는 이미 교도소에 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드디어 힐러리의 식상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트럼프가 했던 말보다 힐러리가 했던 짓을 더 혐오합니다 (I remain much more bothered by what Hillary has done than by what Trump has said).”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성공적인 경력이나 화려한 이력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리더가 갖은 도덕성 (integrity) 이다. 어쩌면 인간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할른지 모른다. 그러나 일찌감치 도덕성을 포기한채 ‘옳은 길’ 과 ‘쉬운 길’ 사이에서 언제나 ‘쉬운 길’ 만 선택한 사람이라면 그의 이력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를 리더로 세워서는 안된다. 안타까운 것은 리더가 되겠다고 나온 후보 뿐 아니라 리더를 선택하는 투표권자 역시 리더의 내면 세계보다 당당한 풍채와 화려한 경력이라는 겉모습을 보는데만 익숙하다는 사실이다.
사무엘 상에 기록된 사울 이야기는 사울을 부정적인 눈으로 보고 있다. 이 부정적 시각은 사울의 화려한 스펙에서 부터 시작된다.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 (삼상 9:1-2)
4대에 이르러 개인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유력하게” 살아 온 대단한 집안의 아들! 보통 사람의 정수리는 그의 어깨 밖에 미치지 못하는 탁월한 키에, 준수한 외모! 이런 외적 스펙은 투표권자의 눈을 매혹시킨다. 흥미롭게도 성경에서 키가 컸다고 표현된 ‘하나님 사람’은 사울이 유일하다. 나머지 거인들은 모두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적이었다. 어쩌면 이것 조차 사울의 내면세계에 대해 저자가 제시한복선이었는지 모른다.
삼상 9:3-10에 나타난 더욱 흥미로운 복선은 잃어버린 아버지의 암나귀(들)을 찾아 몇날 며칠을 헤메었으나 결국 찾아내지 못한 사울의 모습이다. 아브라함-모세-다윗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모두 유능한 목자였다. 그러나 사울은 양 보다 몸 집이 큰 나귀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복수의 군집) 조차 찾아낼 능력이 없다. 또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려는 영적 갈망도 없다. 자신 있었던 곳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9:3-10). 스펙은 화려하나 그는 목자도, 영적리더도, 하나님의 사람도 아니다.
이번 선거가 안타까운 것은 두 후보 중 누구를 선택해도 미국은 영적, 도덕적으로 내려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리더십의 에센스는 리더의 내면세계 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