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전문가는 한결같이 탁월한 리더가 되기 위해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라고 말한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훌륭하다.  그러나 약점을 극복하여 더 좋은 리더가 되지는 않는다.  약점은 개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점이다.  행여 약점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약점은 평균적 능력 정도로만 개발될 뿐, 장점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때문에 리더가 되려면 자신의 장점을 개발해야한다.  이렇게 극대화된 장점을 기반으로 리더는 자신의 리더십을 펼쳐나간다.

그런데 신약 성경 제일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바울의 리더십 기반은 독특하다.  그의 장점은 그가 당대 제일의 학자였던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학문의 정상에 있었다는 것이다.  또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던 시절 자신이 로마시민이었다는 사실은 바울이 가졌던 남다른 장점이었다.  나아가 그는 타의 주종을 불허할 만큼의 환상과 계시를 보았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장점을 저버리고 약점을 자랑했다 (고후 12:9).  다시말해 바울의 리더십 기반은 자신의 약점이었다.  현대 리더십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역설이다.

사실 성경 전체에 나오는 리더의 활약은 우리가 알고 있는 리더십 이론을 무시한다.  모세가 장점이라고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늙고 초라한 노인이 되었을 때 주님은 그를 한 민족을 구원할 리더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주님은 교육이나 재정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부실했던 어부들을 제자로 불렀고, 사역자로 훈련했고, 사도로 파송했다.

이 역설은 오늘날의 교회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왜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심한 지역에서  교회가 성장하는가?  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목회자가 최고의 교육을 받은 서구 세계에서 교회가 퇴보하는가?

며칠이 지나면 성탄절이다.  만유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왕궁에 태어나는 대신 마굿간에 탄생했다.  인류 구원의 엄중한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상의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목수로 살았으며, 요한에게 침례받으면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역하였으나, 어이없이 인간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그가 자신의 신적 능력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로마의 압제로 부터 유대인을 해방시켰다면 자타가 그를 메시아로 인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의 눈에 그는 메시아적 리더라기 보다 제자들의 발이나 씻어주는 나약하고 미천한 종에 불과했다.  그는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했고 부활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밝히 들어내셨다.  역설 중의 역설이다.

이 역설은 지극히 평범한 우리도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오늘 교회는 그 어느때 보다 절실하게 영적 리더를 요구하고 있다.  이 리더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을 극대화하여 남다른 리더쉽을 발휘할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도 좋다.  오히려 약점 투성이의 깨어진 그릇을 통해 주님이 자신의 능력을 들어내신다.  타인에게 내어 놓을 만한 장점이 없기 때문에 오직 주님을 향해서만 목마른 리더. 자신의 장점 대신 자신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최선의 수고를 다하는 리더 (골1:29).  수준이하의 자신을 과대포장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리스도의 주되심 앞에 정직하게 자신을 내어 놓는 리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3:30) 는 고백과 함께 자신을 축소해나가는 리더.  이런 리더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교회를 리드한다.  영적 리더십이 갖은 역설은 이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라” (고후 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