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협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버드 대학교는 1979년부터 교육 프로젝트로 협상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에는 <협상학>을 비즈니스 스쿨과 로스쿨의 정식 교과 과정에 편입했다.
“돌격 앞으로” 라고 외치며 자신의 비전을 추종자들에게 투사하고, 무조건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도록 명령하는 리더십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우리는 협상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전체의 의견을 전략적으로 통합하며 조직을 이끄는 능력이 없다면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한 달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강력히 압박하며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요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이 트럼프가 제시한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협상의 테이블로 나서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는 국제 정치학자가 아니기에, 협상 테이블 아래에서 양측이 주고받는 정치적 수사(修辭)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트럼프는 자신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비즈니스맨으로서 자신이 확신하게 된 협상의 기술을 소개한다. 이 책에서 그의 협상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어떻게 이길 것인가”이다. 트럼프는 승리를 위해 힘, 레버리지, 최상의 압박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이란을 향한 트럼프의 압박은 자신이 믿는 거래 기술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하버드에서 가르치는 협상학은 지속 가능한 협상을 강조한다. 하버드식 협상은 트럼프식 이기는 협상과 달리, 힘이나 레버리지, 압박보다 원칙, 구조, 합리성을 중시한다.
이 칼럼의 목적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트럼프식 협상과 하버드식 협상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결과를 낼 지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극한 상황에서도 무력을 넘어 리더십의 핵심 요소는 ‘협상력’임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협상과 관련된 이야기는 성경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소돔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과 협상을 시도한다. 이때 아브라함이 보여준 협상의 원리는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여 보는 눈, 겸손한 요청, 단계적 접근법(50명, 45명 … 10명)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하나님을 분노케 했을 때,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해 기꺼이 중재자가 되어 하나님과 협상을 시작한다 (출애굽기 32). 이때 모세는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대상임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것을 간구한다. 이해관계와 감정 관리에 초점을 맞춘 협상의 원칙이 여기에 나타난다. 나발의 발칙함에 분노하여 그를 죽이고자 했던 다윗을 지혜롭게 설득하여 상황을 평화롭게 해결한 아비가일의 리더십(삼상 25) 역시 성경에 나타난 탁월한 협상력의 사례이다.
협상력은 비즈니스맨뿐 아니라 목회자에게도 필수적인 리더십 자질이다. 만약 목회자가 하나님만 상대한다면 목회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목회가 어려운 이유는 교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성격과 의견을 조율하며 분쟁을 예방하고, 평화와 일치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목회자가 보여주는 겸손함, 공정한 판단, 문제를 지적하는 용기는 성도들에게 신뢰와 존중을 쌓는 핵심 요소가 된다. 또한, 사역의 목표와 교회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설득과 조율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탁월한 영성이 없다면 성공적인 목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영성이 있다고 목회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리더십을 개발하지 않으면 목회자의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협상력, 즉 중재 능력은 목회 리더십의 중요한 핵심 자질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