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05년 바벨로니아에 전쟁포로로 잡혀 온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에게 발탁되어 적국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제국을 경영하였다. 필자는 다니엘에게서 3가지 탁월한 리더십 자질을 본다.
첫째, 자제력이다. 인간이 갖은 다양한 욕구는 훈련과 성숙을 통해 자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누구도 인간의 본능적 욕구인 식욕, 수면욕, 성욕을 완전히 절제할 수는 없다. 이 세가지 기본욕구 중에도 가장 강력한 것은 식욕이다. 음식은 그저 음식일뿐 거기에는 종교도 사상도 없다고 생각면서 안심하고 경계를 푼채 왕이 하사한 산해진미를 즐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왕의 입맛에 나의 입맛이 맛추어지고, 왕의 가치관이 나의 가치관이 되고, 어느덧 하나님에 대한 허기과 갈증보다 왕을 기쁘게 하는데 몰두할 위험성이 있다.
“식욕” 이라고 표현된 인간의 원초적 갈망은 음식에 대해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와 명예, 성공과 권력에 대한 갈망도 마찬가지이다. “권력은 최고 권력자와의 거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다니엘이 왕이 하사한 산해진미를 하루에 세번 먹었다면 그것은 권력에로의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것을 거부하였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이지 출세, 명예, 성공, 권력이 아니었다.
“죄가 무엇이지요?” 라는 어린 존 웨슬레의 질문에 어머니 수잔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들아 만일 그 무엇이 너의 지성을 약하게 하고, 너의 양심을 둔하게 하며,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흐리게하고, 영적인 것들에 대한 갈증을 빼앗아 간다면 그것이 아무리 귀하고 훌륭한 것이라 할찌라도 그것은 네게 죄가 되느니라” 리더가 리드하기 가장 힘든 대상은 다름이 아닌 리더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을 절제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없다.
둘째, 자기 개발을 통한 끊임없는 성장이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이미 탁월한 유다의 귀족이었기 때문에 차출되어 바벨로니아의 리더십 훈련을 받았다 (단1:4). 3년간의 훈련 결과는 놀라왔다. 그들은 바벨로니아의 박수와 술객보다 열배 탁월하게 성장했다 (20절). 박수와 술객의 업무는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다.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은 국가지도자에게 필수적인 리더십 자질이다. 바벨로니아의 박수와 술객이 해석하지 못한 느부갓네살의 꿈을 다니엘이 해석하자 왕은 그를 총리대신에 지명하였다. 인간은 자신의 눈을 만든 만큼 진리를 볼 수 있다. 국가의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눈은 끊임없는 연구로 자신을 성장시켜야만 만들어진다.
세째, 영성이다. 역사에 남을 탁월한 족적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9절).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17절).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는 것은 다니엘에게 집요하게 하나님을 주구하는 영성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영성은 종종 고매한 인격으로 표현된다. 지성보다 중요한 것은 인격이다. 우리는 흔히 추종자가 리더의 비전을 받아들이고 따른다고 생각한다. 오산이다. 추종자가 먼저 받아들이는 것은 리더의 비전이 아닌 인격이다. 추종자가 리더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리더가 제시하는 비전을 받아들이고 그의 지휘를 받을리 만무하다.
이제까지 대한민국에는 국무총리 직무대행, 총리 서리까지 합쳐 총60명의 국무 총리가 있었다. 이들의 평균 재임기간 15 개월이다. 반면 온갖 음모와 술수로 운영되었던 고대 궁정에서 다니엘은 왕이 다섯번 바뀌기까지 65년간 한결 같이 총리 대신의 자리를 지켰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매한 인격과 탁월한 실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니엘은 자신을 시기한 바벨로니아의 관리들 조차 그를 고소할 흠을 찾지 못할 정도로 투명한 삶을 살았다.
모든 일의 흥망성쇠는 리더십에 달려있다. 한 나라를 이끌어야하는 지도자의 자질이나 한 회사를 이끌어야하는 CEO 의 자질이나, 한 가정을 이끌어야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자질 모두 동일하다. 목회자도 예외는 아니다. 자기 절제, 끊임없는 자기개발, 하나님의 은혜와 영성으로 만들어진 고매한 인격이 없다면 탁월한 리더십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