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 제커라이아스

5월 19일 우리는 이시대 가장 견고한 기독교 지도자 중 한사람을 잃었다.  우리에게 Ravi Zacharias (라비 제커라이아스) 라는 이름으로 익히 알려진 그의 본명은 Frederick Antony Ravi Kumar Zaharias 이다.  라비는 1946년 인도의 마드라스 (현 체나이) 의 명문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고관대작이었기 때문에 정부 관청이 있는 델리에서 성장했으며 어렸을 때 총리 관저에서 간디 수상의 자녀들과 함께 놀았던 기억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형제들 가운데 가장 성적이 열등했기 때문에 아버지로 부터 ‘실패자’ 라는 낙인이 찍힌채 성장했다.  결국 그는 17살의 나이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독극물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하였다.  병원에 옮겨진 그는 선교사가 가져다 준 성경에서 인생의 답을 찾았다.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요14:17).  그리곤 병상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께 자신의 삶을 드렸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예수님, 이 말씀대로 당신이 생명의 근원이라면 저도 그 생명을 원합니다.  제가 살아서 병원을 나간다면 진리에 관한한 연구되지 않은채 널려져 있는 돌들을 모두 뒤집어 그 배면까지 연구하겠습니다.”  그 이후 라비는 그의 기도를 실천에 옮겼다.

1966년 20세가 되었을 때 그의 가족은 카나다에 이민하여 토론토에 정착하였다.  호텔업에 뜻을 두었던 청년 라비는 호텔에서 일을 하던 중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직장을 사임하였고 온타리오 바이블 칼리지 (현재 Tyndale University로 개명) 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다.  또 1971년, 월남전이 한창 진행되던 중 그는 월남에 가 미군들과 포로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었던 베트콩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다. 1972년 그는 바이블 칼리지를 졸업하였으며 그 동안 사귀었던 Margaret “Margie” Reynolds 와 결혼하여 가정을 만들었다.  1974년 월남전의 막바지에 라비는 자신이 속한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C&M) 교단의 파송으로 캄보디아에서 캄보디아가 공산 크메루지 군에 함락되는 순간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종군 설교자로서 삶과 죽음을 목도했던 두 번의 경험이 복음전도자로서 라비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해 주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1976년 그는 시카고 인근 디어필드에 소재한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M.Div. 과정을 Summa cum laude (최우수) 로 졸업하였으며 이후 신학대학원 재학시절부터 시작했던 순회 복음전도자로서의 사역에 집중하였다.  1980년 C&MA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음과 함께 현대 문화에 대한 그의 복음적 비평이 인정을 받아 교단의 신학교인 Alliance Theological Seminary (뉴욕의 나약 소재) 에서 Evangelism and Contemporary Thoughts 의 학장으로 재직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복음전도자로 북미 전체에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던 라비가 세계적인 복음전도자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1983년 암스텔담 83 국제 복음전도자 대회에서 주 강사로 말씀을 전했을 때 였다.  대회장이었던 빌리 그래함은 당시 37세 밖에 되지 않았고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라비를 이렇게 소개하였다.  “ “저는 라비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이런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무명의 복음 전도자가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저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라비 제커라이아스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타종교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라는 제목으로 그날 라비가 전했던 메시지는 133개국에서 온 3800명의 복음 전도자를 열광하게 했다.  “우리는 종종 타종교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이 믿는 종교를 신학적으로 박살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적에 이렇게 말해 주셨습니다.  “아들아 상대방의 코를 배어낸 후에 향기로운 장미를 냄새 맡도록 전해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단다.”  진리에 대해 타종교인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존중하면서부터 진리에 대한 토론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암스텔담 83 순회복음 전도자대회와 거기에서 전했던 라비의 메시지는 이후 자신의 사역을 특징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암스텔담을 떠나 뉴욕으로 날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라비는 그의 아내와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와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 (회의론자, 무신론자, 타종교인) 이 기독교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적절한 답을 주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그들의 질문을 진리를 알기 원하는 인간 내면의 외침으로 이해하여 그 인격을 보듬어줄 답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그들의 질문을 도전으로 간주하고 그 도전에 응전할 신학적 정답을 주는데만 급급한가?  우리 기독교는 사고(思考) 하는 사람들의 무게있는 질문에 의미있는 답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질문에 대한 답은 주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복음만을 선포하고 있는가?”  이 부부의 대화는 훗날 복음전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복음전도자와 전도단체의 출현을 위한 씨앗이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이부부는 신학교 교수가 아닌 복음전도자로서 라비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만일 우리가 갖은 영적 부담이 주님으로 부터 온 것이라면 새로운 사역을 시작할 수 있는 비용으로 오만불의 헌금이 들어오게 해 주십시오.”  두 부부는 이 기도제목을 오직 주님에게만 내어 놓을 뿐 절대로 사람에게 나누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던 중 라비는 뉴욕의 어느 호텔에서 열렸던 기독실업인 모임에 초청 받아 말씀을 전했다.  그때 이 집회에 참석했던 실업인  D.D. Davis 는 라비의 메시지에 감동을 받아 그를 주목했다.  그순간 그의 마음 속에 라비의 사역을 위해 오만불을 헌금하라는 알 수 없는 부담이 생겨났다.  드디어 그는 자신의 호텔 방에서 오만불의 수표를 사인한 후 설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라비를 호텔 입구에서 만나 감사 인사와 함께 그 헌금을 건네었다.  그러나 라비는 “이렇게 큰 액수의 돈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선듯 받을 수 없다”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라비는 계속 말했다.  “만일 당신이 갖은 영적부담이 진심이라면 저와 개인적으로 만나 제 가슴에 있는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그리고 나서도 여전히 오만불을 저에게 헌금하고자 하는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저는 기꺼히 그 헌금을 받겠습니다.”  훗날 그들이 다시 만나 대화했을 때 Davis 는 그 오만불이 주님의 뜻이었다는 사실에 감격하면서 오만불 뿐 아니라 라비가 시작하려고 하는 라비 제커라이아스 국제 전도협회 (Ravi Zacharias International Ministries–RZIM) 의 이사장이 되어 라비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후원하겠다고 헌신했다.

1984년, 라비는 드디어 신학교 교수직을 사임하고 RZIM의 대표로 전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92년 하버드 대학에서 열렸던 Varitas Forum (베리타스는 라틴어로 진리) 의 강사로 말씀을 전하면서 라비는 오늘날 그가 가지고 있는 명성에로의 첫 문을 열었다.  복음 전도자로서 라비는“믿으면 알게 될 것이다”라는 교회의 보편적 전도방식으로는 설득시킬 수 없는 “알아야만 믿을 수 있는 2% 의 인구”를 향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논리로 기독교의 핵심을 설명해 주는 것을 자신의 소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는 빌리 그래함 같은 대중설교자가 아니다.  그렇다보니 라비는 대중에게는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outube 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제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설교자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는 비록 믿음의 깊이에는 차이가 있으나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요 주님” 으로 인정하는 세계관을 가진 안전지대 (교회)”를 떠나 “기독교는 허구”라고 믿고 있으며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서 복음이 왜 진리인가를 논리적, 역사적,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사역을 해 왔다.  지난 1980년대 중반, 필자는 라비의 이런 기도제목을 들은적이 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다음 주에 이란이 수도 테헤란에서 10명의 근본주의 이슬람 신학자들과 10대 1로 왜 기독가 역사적 진리인가를 토론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미국과 유럽의 대학은 모두 자유주의 사상에 장악되어있다.  이런 대학에서 강의와 토론을 하도록 초청을 받는 복음주의 설교자는 라비 제커라이아스가 유일하다.  그가 젊었을 때 대학에서 그가 인도했던 집회는 이런 식으로 구성되곤 했었다.  첫 번 강사로 자신이 학생과 교수들 앞에 서서 “왜 기독교는 역사적 진리인가”를 강의한다.  두 번째 강사로 그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 교수가 나와 “왜 기독교는 허구인가” 강의하게한다.  그리고 세 번째 시간에는 학생과 교수들이 보는 앞에서 두 사람이 공개 토론을 하고 청중의 질문을 받는다.  나는 1992년 라비의 하버드 대학 베리타스 포럼 강의를 녹음 테이프로 들으면서 그가 스텐포드대학에서 가졌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라비, 당신은 동양인이지만 안타깝게도 서양교육을 받는 바람에 진리에 이를 수 있는 논리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스텐포드의 무신론 철학교수가 공격적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논리는 <A 이거나 B이거나> 의 논리입니다.  다시말해 “진리는 A 아니면 B, 둘 중 하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편협한 논리로는 절대 진리에 이를 수 없습니다.  나는 서양인으로서 운좋게도 인도철학을 공부하여 진리에 이르는 논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논리는 <A도 B도> 의 논리입니다.  “기독교도 진리이고 힌두교도 진리이다.  불교로도 구원받을 수 있고 이슬람교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진리는 “복수이며 다원적이고 보편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라비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이렇게 되받았다.  “만일 나의 논리로는 진리에 이를 수 없고 당신의 논리로만 진리에 이를 수 있다면 왜 당신은 “나의 논리로도, 당신의 논리로도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나의 논리로는 안되고 당신의 논리로만 진리에 이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주장하는 <A 이거나 B> 의 논리입니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학생과 교수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적어도 라비가 제시한 논리의 일관성에 환호했다.  라비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인도 출신입니다.  인도 같이 혼돈스런 나라에서도 길을 건너기 전 우리는 좌우를 먼저 살핍니다.  그때 우리가 갖은 논리는 “보행자냐 자동차이냐?” 입니다.  만일 이 순간 우리의 논리가 “보행자도 자동차도” 라면 우리에게 닥칠 일은 교통사고 밖에 없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당신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보십시오.  “여보, 당신을 사랑하오.  또 옆집 제니퍼도 사랑하고, 그 옆집 에이미도 사랑하고, 나아가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을 나는 사랑하고 있소.”  당신이 당신의 아내를 그런 식으로 사랑한다면 당신의 결혼은 비참한 이혼으로 끝나고 말것입니다.”  청중은 폭소했다.  그 다음 라비는 엄중하게 말했다.  “진리는 그 정의 자체가 독점적입니다 (Truth by definition is exclusive).  당신이 주장하는 진리가 독점성이 배제된 채 모든 종교적 가르침을 다 흡수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닌 진공 소제기 일 뿐입니다.”  그 순간 청중은 환호와 함께 뜨거운 박수를 라비에게 보내었다.